그리스 로마로 시작되는 서양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뺏고 뺏기는 전쟁 속에서 그들의 국경선은 계속 바뀌었고 전쟁에서 이긴 승자들은 영웅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들의 봉기가 일어나면서 혼란을 틈타 영웅이 등장하고 이들은 정복의 야욕을 드러낸다. 19세기 부터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유럽대륙 정복을 시작으로 영국과 프로이센의 등장, 여기에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이 시발점이 된 세계 1차대전은 역사책에 단골 손님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참호전은 끔찍했던 전쟁사에서 자주 언급되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1917’, 최근 개봉한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있다.
그럼 참호전 전투는 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영화를 통해 전쟁에 이면도 살펴보도록 하겠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암살된 사라예보 사건을 시작으로 1917년에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까지 이어졌다.
나폴레옹 유럽 대륙 정복 부터 크림전쟁,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 등 크고 작은 전쟁들이 발발했지만 1차 세계대전은 전례가 없던 세계대전으로 번져 약 4천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결국 대영제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이라는 삼국 협상을 기반으로 한 협상국이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동맹국에 승리함으로써 1차 세계대전을 끝났다.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 그리고 제국주의 맞물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었고 종교갈등과 영토전쟁 식민지화 속에서 강대국들은 끊임없이 부딪쳤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대참사를 낳았다.
참호전 시작
독일 제국의 침공으로 인해 프랑스 파리를 코 앞에 두고서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여졌고 각국은 서로의 참호를 파기 시작하였다.
불과 500여 미터에 불과했던 프랑스(영국도 참전)와 독일의 참호는 서로 뺏고 뺏기는 지루한 양상을 무려 4년이나 지속하게 된다.
만약 상관의 명령에 의해 적진으로 돌격시에는 기관총에 의해 양국의 청년들은 시체 더미를 만들어냈다.
비까지 많이 오는 지역이라 시체들이 쉽게 부패하고 전염병이 돌았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우고 독가스까지 사용되는 등 참혹함은 더해갔다.
하지만 전쟁 중 1914년 12월 크리스마스가 되자 전쟁통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시작된 캐롤송이 서로의 마음을 움직였고 서로의 참호에 방문하여 음식을 나눠먹고 심지어 어떤 참호에서는 축구경기도 열렸다. 하지만 이는 잠시였다. 다시 전쟁이 시작되면 수시로 폭탄이 떨어졌고 독가스라는 비윤리적인 방법까지 등장했다.
대량 살상을 위한 무기들이 연이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류탄과 탱크였다. 영국군에 의해 개발된 탱크는 지금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첫 등장에 독일군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해군 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탱크 개발에 참여였다고 한다.
트렌치 코트의 유래
유행에 따라 다르겠지만 트렌치 코트는 옷장에 한 벌 정도는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겨울용 코트다.
사실 트렌치 코트(Trench coat)는 제1차 세계대전 참호 전에서 유래된다. 영화에서도 볼 수 있지만 독일군을 비롯하여 프랑스군 영국군 모두 길게 늘어진 코트를 입고 있는데 이는 전쟁 중 비바람과 각종 먼지와 흙 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트렌치 코트는 2차 세계대전에서도 장교들 위주로 입게 되었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한 군납업체가 대중들에게 판매를 하였는데, 바로 영국의 버버리였다.
참고로 독일의 2차 세계대전 장교 군복도 지금도 세련됐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섰다. 이는 히틀러가 독일의 청년들을 군부로 끌어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디자인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나치 친위대 군복은 물론 나치 로고 역시 한 디자이너의 손에서 탄생하였고 한 의류업체에 의해 군복이 제작되었다.
나치당에 군복을 제작 제공하고 나치당에도 가입했던 사람이 바로 휴고 보스의 창업자인 후고 페르디난트 보스였다.
지금도 독일 남성 명품업체 특히 정장으로 유명한 휴고 보스가 나치당의 군복을 책임졌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제1차 세계대전 독일의 패배 그리고 히틀러가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 역시 연합군에 패배하여 전쟁사에서 항상 악인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유대인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강제 징병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은 영화로도 자주 만들어졌다. 항상 독일군은 나쁜 놈이고 연합군인 영국 프랑스 군인들이 주인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독일 작품으로 젊은 독일 청년들이 징병되고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면서 처벌하게 짓밟힌 장면들을 잘 묘사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영화는 독일 소설가인 에리히 레마르크에 의해 1929년에 출간된 소설을 각색하였고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3번째 작품이다.
전쟁이 뭔지도 모른채 죽은 병사의 군복을 입고 친구들고 놀러라도 가는 듯 해맑았던 독일 청년들은 현장에서 친구들을 옆에서 잃고 동료들을 잃고 본인 마저 명령에 복종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4년이나 끌었던 서부전선 참호전은 전쟁의 참혹함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친구들과 학교 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담임 선생님은 군입대를 권유받고 전쟁의 잔인함을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비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간에 기성 세대인 사령관이나 휴전을 준비하는 권력층들은 우아하게 앉아서 스테이크를 먹고 커피를 즐기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았다.
결국 전쟁은 기성 세대들의 야욕에서 시작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피들은 그들의 희생양으로 이용되는 듯하여 매우 안타까웠고 앞으로도 어떤 전쟁도 명분이 있어도 발생해서는 안된다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