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워털루 전투 승리했다면 세계사는 바꼈을까

어린이들을 위한 추천책에는 세계사에 자주 등장하는 위인전이 자주 등장한다. 요즘은 빌 게이츠나 엘론 머스크 처럼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바꾼 현존하는 부자들도 위인전으로 출판되기도 한다.

이외 세계사에 한획을 근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이 대다수인데, 과학자, 전쟁영웅, 독립운동가 등이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도 위인전에 단골로 나오는 전쟁 영웅이며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추앙(?) 받는 위인이다.

영국이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통해 유럽의 경제를 부흥시켰다면, 나폴레옹은 19세기에 프랑스 혁명과 함께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고 정치적으로 유럽의 위상을 높인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해상력은 영국이 최고였지만 육상에서 그의 전쟁 전략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뛰어났다.

프랑스 파리를 가면 볼 수 있는 개선문이 파리의 상징물 중 하나가 된 것만 보아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서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나폴레옹 업적과 함께 간단한 일대기를 간단하게 서술해보고 만약 나폴레옹이 끝까지 살아남았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도 가미해본다.

혼돈의 시대에 나타난 영웅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학생들의 세계사 교과서에 단골로 나오는 사건이다.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은 왕실의 사치다. 태양왕 루이14세와 본인이 고안한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한 루이16세에 이르기 까지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왕실과 귀족들의 파티가 매일 열렸다.

이들의 호화로운 삶을 유지시키기 위해선 평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였고 굶주림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민중은 드디어 프랑스 혁명을 통해 폭발하고 만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은 군인으로서 재능을 발휘하였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결국 쿠데타를 통해 황제 지위까지 오른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인이 아니다?

사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가문 출신이다. 태어난 곳이 코르시카 섬인데 이탈리아에 속한 섬이지만 그 당시 프랑스에 잠시 병합된 상태였다.

프랑스인들의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인의 피가 흐르고 프랑스어도 쓰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는 것은 잼있는 부분이다.

나폴레옹은 시저와 동급?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거대한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다.

다비드가 그린 초안과 달리 나폴레옹이 아내인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우는 장면으로 나와 있지만 초안에는 나폴레옹 스스로 왕관을 쓰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교황을 불렀지만 그에게서 관을 받는 대신 스스로 관을 썼고 이에 교황이 항의하자 지금의 모습으로 그림이 바뀌었다.

또한 잼있는 것은 나폴레옹 대관식에 로마의 카이사르 시저가 그려졌다는 것이다. 유럽의 황제의 대명사가 된 시저를 그림으로써 본인도 동급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참석하지 않은 나폴레옹 어머니 그림도 그리는 등 사실과 달리 미화된 부분이 많은 그림이지만 결국 나폴레옹이 황제로 오르는 상징적인 그림이며 루브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있다.

작은 키와 짧은 수면시간

나폴레옹하면 키가 작았지만 잠을 적게 자면서 노력하여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고 미화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도 사실일까?

나폴레옹의 키는 약 170cm로 알려졌고 당시 평균키에 비해 결코 작은 키가 아니었다. 단지 적국이었던 영국이 나쁘게 묘사할 때 키를 작게 하였고 생김새가 둥글둥글하여 커보이지는 않았을 뿐이다.

나폴레옹은 하루 3~4시간 자고 말 위에서 토막잠을 잤다고 한다. 전쟁에 자주 참여하다 보니 푹 잠을 잘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이고 말 위에서도 잠깐 졸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독선적이고 본인을 높이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어 실제 잠보다 적게 잤다고 말하기도 하고 젊은 시절 주위 사람들 말로는 잠은 충분히 잤다고 한다.

영원한 맞수 영국 트라팔가르 해전

유럽의 대부분을 차지한 프랑스 나폴레옹은 한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바로 영국이었다. 그 당시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했고 동시대 영웅인 넬슨 제독이 있었다. 넬슨은 우리나라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도 같은 영국의 전쟁 영웅이었다.

전략가인 나폴레옹은 한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영국과 프랑스를 건너갈 수 있는 가장 짧은 바다인 영불해협을 건너기 위해 스페인과 연합한 해군으로 유인 작전을 펼쳤다.

트라팔가르 해전이라 함은 스페인의 지역명으로 1805년 이곳으로 영국 해군을 유인하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넬슨 제독에게는 먹히지 않았고 결국 나폴레옹의 영국 침략은 실패했다. 1척의 배도 빼앗기지 않은 영국은 21선이나 되는 프랑스 스페인 연합 함대를 포획하였다.

대륙봉쇄령 및 러시아 침공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대패한 나폴레옹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투가 아닌 경제로 영국을 압박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대륙봉쇄령인데 유럽 대륙 국가들에게 영국과의 무역을 금지시켰고 이로 인해 영국이 부채와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적으로 치명타를 입을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품질이 좋은 물건들을 대량 생산할 수 있었고 유럽 국가들은 이를 소비하기를 원헀고 밀수가 이뤄지면서 나폴레옹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중 러시아가 가장 눈에 가싯거리였는데 나폴레옹은 분노한 나머지 그의 최대 실수인 1812년 러시아 침공을 단행한다.

주변국들과 연합하여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도달했지만 러시아의 보급로 차단 등 전략에 속아 추운 날씨와 식량난에 자진 후퇴하는 수모를 당했다.

대륙봉쇄령의 부작용을 전쟁으로 이기고자 했지만 오히려 패배하여 역효과를 보았고 엘바섬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백일천하 워털루 전쟁

엘바섬 영주로 사실상 프랑스에서 쫓겨난 나폴레옹이었지만 그의 야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엘바섬을 탈출하여 옛부하들과 의기투합하여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나폴레옹 이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없었고 프랑스가 쇠퇴해가는 과정이라 프랑스 국민들은 나폴레옹의 재기에 환호하였다.

하지만 이미 영국과 프로이센은 국력이 신장하였고 연합하여 프랑스를 포위하였고 결국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백일천하로 그의 인생은 막을 내린다.

아쉬운 점은 워털루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수 있었으나 잠시 방심한 탓에 역공을 당했다는데 만약 이 전투에서 이기도 다시 프랑스가 유럽 전역을 지배하였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영국이나 지금의 독일인 프로이센이 계속 번성하였을까 또한 세계대전이 치뤄졌을까 등 다양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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