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음식에 대한 욕망, 성적 욕망, 돈에 대한 욕망 그리고 권력에 대한 욕망 등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게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총칼을 들고 타인에게 해를 입히면서 일부분을 채워나갔다. 바로 전쟁사인데, 현대에 들어서도 각국은 국익을 위해서 전쟁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국지전이 최근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식재료 때문에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다. 바로 후추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후추전쟁, 후추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깃 거리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금일 쓰고자 하는 대항해시대 후추전쟁 역시 큰 틀에선 벗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중요한 사건이었기에 필자의 관점에서 간단히 요약해보고자 한다.
서양의 향신료 사랑
동양의 반대 개념인 서양은 유럽 전역과 북미 정도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중국 송나라에 처음 사용되었고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쳐 선교사에 의해 한자로 번역된 세계지도를 접하면서 서양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었다. 유럽의 서쪽의 바다를 대서양이라 불렀다.
유럽은 평지며 목축업이 발달하여서 고기의 공급이 충분하였기에 옛부터 고기는 항상 식탁 위에 올라왔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공급량이 충분한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 소금에 절여 소세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절여진 고기는 특유의 냄새인 누린내로 인해 사람들의 식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후추가 등장한다. 후추를 첨가하니 누린내가 없어지고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신세계였다.
고기가 주식인 서양인에게 맛있게 조리될 수 있는 획기적인 음식이 바로 후추였떤 것이다. 게다가 고기와 함께 서양인들이 좋아했던 생선도 비린내를 없애주고 장기 보관을 용이하게 해주었다.
이때부터 후추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향신료가 바로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인 식욕을 돋아주었고 이는 쟁탈전으로 번졌다.
만약 서양이 후추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대항해시대도 열지 못했고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지도 못했으며 지금의 미국이라는 나라도 과연 형성되었을까 싶다.
후추로 인한 인도의 흑역사
이러한 후추는 인도에서 많이 재배되었다. 이미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인도에서는 후추 등 향신료가 많이 사용되었다.
더운 날씨로 인해 향신료가 잘 자랐고 음식이 잘 부패하여 방부제 역할을 하는 향신료 사용은 실생활에 쉽게 접목되었다.
한국에서도 자주 먹는 카레도 강황이라는 인도산 향신료다. 후추와 함께 인도의 대표적인 향신료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향신료를 쟁탈하기 위해 유럽 각국은 후추 쟁탈전을 벌였고 선봉장이었던 포루투칼에서 네덜란드 이어서 영국의 침탈을 받는 인도의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대항해 시대의 개막
인도에서 대량의 향신료 등 후추를 유럽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대항해 시대 이전에는 육로를 거쳐야 했다. 여기서 아라비아 상인들이 중간상 역할을 했다.
인도에서 유럽대륙으로 넘어오기 위해선 중동을 거쳐야 하는데, 중동과 항상 대립각이었던 유럽은 후추의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기 만무했다.
11세기 말부터 약 이백년간 지속된 십자군 전쟁은 성지 탈환이라는 목적과 함께 이면에는 후추 무역로 개방이라는 경제적인 목적도 있었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후추 공급이 재개되었다.
그래도 후추의 공급은 제한적이었고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독점 공급하여 값은 거의 금값 수준이었다.
이에 중세 유럽인들은 향신료 후추를 통해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였다고 한다. 금 항아리에 후추를 보관하였다니 이는 금 보다 귀한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15세기경 강대국 오스만제국은 동로마를 멸망시키고 후추 무역로를 단절시켰다. 이때부터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자의든 타의든 후추를 얻기 위해서는 육로가 아닌 해상로를 열어야 했고 포르투칼의 엔리케 왕자가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스페인도 가세하여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하는 등 큰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무력을 사용하여 인도에서 후추를 빼앗고 아프리카를 식민지한 포르투갈은 쇠퇴기를 맞으면서 이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내주게 된다.
이렇게 후추로 인해 시작된 인류의 이동은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이는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문명의 발달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이 현대사회를 더 빨리 앞당겼는지도 모르로 앞으로도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싶다.